별자리는 천구의 밝은 별을 중심으로 지구에서 보이는 모습에 따라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이는 보통 비슷한 방향에 놓여 있지만, 실제로 같은 별자리에 속한 별들이 반드시 가까운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별자리는 문화권과 시대에 따라 다르게 분류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국제 천문 연맹에서 정한 88개의 별자리가 공통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북두칠성이나 봄의 삼각형과 같이 널리 알려진 별 집합을 성군이라고 합니다.
별자리는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며 별들을 관찰할 때 도움이 되는 도구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천문학적인 사물이나 이야기를 연상할 수 있습니다. 별자리는 우리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우주의 신비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별자리는 기원전 3천년 바빌로니아 부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그리스와 로마로 전해지면서 영웅과 동물 등의 이름이 별자리에 부여되었습니다. 이는 고대 문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호머와 헤 소이들의 작품에는 오리온과 큰곰자리가 등장하며, 시인 아라토스의 피아노에 나에서는 44개의 별자리 목록이 소개되었습니다. 그 후 약 4~50개의 별자리로 개수가 고정되었고, 현재 사용되는 별자리는 2세기 후반 그리스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정리한 48개를 기준으로 합니다.
중세에 들어서면서는 별자리를 성도에 연결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습니다. 팰 터 아리안은 프톨레마이오스의 48개 별자리에 머리털자리와 사냥개자리를 추가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튀코 브라헤와 요하네스 헤벨리우스 등이 조금씩 수정을 가했습니다. 17세기 이후에는 일부 별자리가 분할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르고자리는 고물자리, 돗자리, 용골자리, 나침반자리로 나뉘었습니다. 그리고 1750년경에는 프랑스의 니콜라 루이 드 라카유가 남쪽 하늘의 별자리를 관측하여 14개의 별자리를 추가하면서 현재의 88개 별자리가 형성되었습니다.
이후 1930년에는 국제 천문 연맹이 1875년 춘분점을 기준으로 적경과 적위를 매기고, 88개 별자리 사이의 경계를 정확히 설정했습니다. 또한, 라틴어 이름과 약자를 정했습니다. 이를 통해 현재의 별자리 체계가 완성되었습니다.
현대의 별자리 이름은 주로 라틴어로 된 단어이거나 고유한 이름입니다. 일부별들은 위치한 별자리의 이름을 따라 소유격이나 탈 격 형태로 표현됩니다. 이러한 이름은 라틴 문법의 규칙을 따라 만들어집니다.
예를 들어, a로 끝나는 경우에는 끝에 e를 붙입니다. us로 끝나는 경우에는 i로 변경됩니다. Es로 끝나는 경우에는 두 문자 사이에 ti를 넣습니다. 하지만 목동자리는 예외로 Es로 끝나지만 e 앞에 t가 있어 Bootes로 변경됩니다. 자음+i로 끝나는 경우에는 i를 삭제하고 rum을 붙입니다. x로 끝나는 경우에는 CIS로 교체되고, o로 끝나는 경우에는 us로 교체됩니다.
또한, 모든 별자리 이름은 IAU(국제천문학연맹)에 의해 지정된 표준 약어로 표시됩니다. 예를 들면, 양자리는 Ari, 물고기자리는 PSC, 궁수자리는 SGR, 큰곰자리는 UAM 등입니다.
별자리 내에서 특정 별을 식별할 때는 바이어식별이 사용될 수 있습니다. 또는 플램스티드 명칭을 사용하거나 번호로 표시될 수도 있습니다. 어두운 별들은 종종 별자리 이름이 없는 번호로만 표시됩니다. 때로는 3글자 별자리 명칭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예: Alpha Cen, 61 Cy, RR Lr)
동아시아의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19세기까지 별자리를 사용했습니다. 이 별자리는 복희씨라는 인물이 하늘을 관측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5세기경에 만들어진 칠기 상자에서 별자리의 명칭이 확인되었습니다. 이후 3세기 초에는 약 280개의 별자리로 구성된 별자리 체계가 완성되었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 체계는 3개의 원과 28개의 수, 그리고 약 1460개의 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원은 세 쌍의 담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넓은 영역을 둘러싸는 두 개의 담장과 그 내부의 작은 별자리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8수는 3원을 제외한 영역을 28개로 나눈 영역을 의미합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고구려 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천문도입니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소실되었고, 조선 태조 시대인 1395년에 다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해 잊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1687년에 이민철이 남아있던 복사본을 이용하여 새로운 돌에 새겼습니다. 그 후 영조 시대에는 천문을 관리하던 사람이 경복궁에서 태조 본 돌 천문도를 발견하게 되었고, 흠경각에 보관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1991년에 덕수궁 유물전시관에서 태조 본 천문도를 옮기다가 뒷면에 또 다른 천문도를 발견하였습니다. 따라서 현재는 총 3개의 천문도가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태조 본은 덕수궁 궁중 유물전시관에, 숙종 본은 세종대왕기념 본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망원경을 사용하지 않고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대략 6등까지입니다. 하지만 시가지에서는 밝은 빛 때문에 2등 또는 1등까지만 볼 수 있습니다. 어두운 밤에 10cm 정도의 망원경을 사용하면 약 11등까지, 20cm 망원경을 사용하면 약 13등까지 볼 수 있습니다.
점성술은 천체 현상을 관찰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점술입니다. 이 학문은 태양, 달, 행성 객체들의 위치를 기반으로 개인의 성격을 설명하고 미래의 사건을 예언하는 천궁 도의 체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에서 천문학적인 사건에 중요성을 두며, 인도인, 중국인, 마야인들은 천체 관찰을 통해 지상의 사건을 예언하기 위한 체계를 발전시켰습니다.
점성술은 성전기원 전 3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역법 체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역사 동안 학문적 전통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17세기 말경, 천문학의 새로운 과학적 개념이 등장하면서 점성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이후의 연구에서도 예언적인 가치를 확증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 점성술은 학문적인 입지를 잃게 되었습니다.
과학적인 공동체들은 점성술을 의사 과학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점성술의 예언력에 대한 반증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계몽운동 이후, 특히 고전역학이 소개되면서 점성술에 대한 일반적인 신념은 많이 감소했습니다. 점성술의 과학적 평가가 진행되고 있지만, 점성학의 전통에서 제시되는 효과들을 지지하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항성과 행성의 위치나 움직임이 지구상의 사람들과 사건들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은 생물학과 의학의 기본 원리를 반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